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지난 4.24 열린 제63차 대한의사협회 대의원총회는 유례없이 많은 기사를 남기며 시끌벅적한 소란 속에서 끝이 났다. 총회는 끝났지만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총회 말미에 있었던 재감사결정도 의협집행부는 의결사항이 아니라고 의장의 실수라고 무시하기로 한 모양이다.
물리적 충돌까지 예상되어 집행부측에서 경찰 1개 중대를 대기시킬 만큼 긴장감이 돌았던 총회가 모두 끝난 후, 의협집행부와 전의총 그리고 의료계 전체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의협집행부는 총회가 끝나고 저녁에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사퇴를 모면한 것에 대해 축배를 든 것으로 보인다(게다가 대외사업추진비 2억5천만원을 영수증도 없이 사용했는데도 결산보고가 통과되었고 이번에도 2억5천만원의 대외사업추진비가 또 승인되었으니 축배를 들 만도 하다). 모 시도회장은 총회 당일 새벽, 내게 전화를 걸어 경회장이 자포자기 상태여서 곧 사퇴를 할 것이니 이제 그를 그만 용서해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예상대로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돌이켜보면 경회장의 연극이 아니었나 한다). 화사한 봄날 휴일에 전국에서 수백명의 회원들이 나들이를 포기하고 대의원총회에 몰려와 사퇴를 요구하고 절규하였지만, 그는 끝까지 회원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모든 논란의 중심에 그의 범죄와 부도덕이 있었지만, 그는 모두 외면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지금까지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초자아의 발달이 미숙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덕불감증에 걸린 그의 행동이 얼핏 이해가 간다.
대의원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의 공통된 의견은 “대의원 총회가 이 지경인줄 몰랐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양복을 잘 차려 입고 점잖을 빼는 대의원들은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의 회의를 하여 회원들의 비웃음을 사고, 사정 없는 폭언으로 대의원들로부터 빈축을 산 회원들은 오히려 대의원들의 몰상식을 탓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하루 종일 연출되었다.
그 한 예는, “의협회장이 개인적인 소송에서 패소할 때, 소송비용을 협회비로 사용하지 않고 개인비용으로 충당한다”라는 의제를 표결한 것이다. 개인적인 소송은 승소하거나 패하거나 관계없이 개인 돈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지극히 상식적인 일을 대의원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모여서 표결을 하고 있다. 회원들이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어찌 비웃음거리가 아닐 수 있는가?
또 다른 한 예는, 전자투표라는 이름으로 대의원들의 투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비공개로 슬쩍 넘어가려는 대의원들의 음흉한 속내이다. 대의원은 ‘지위’가 아니라 회원들의 뜻을 대변하는 역할을 가진 직책일 뿐이다. 따라서 찬반에 대한 투표내용은 반드시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각자의 투표 내용을 공개하라는 회원들의 요구에 대해 대의원들은 무엇이 두려웠는지 끝까지 비공개를 고집하였다. 예전에 하던 방식인 ‘거수’도 거부하였다.그들은 그것이 대의원의 권리라고 주장하였다. 그것도 비상식이다.
즉,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대의원들이 만든 ‘의사 사회’였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것은 어쩌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수직적인 문화가 폐쇄적인 의사사회 안에서 방해 받지 않고 존재해왔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최근까지도 계속된 수련의들에 대한 폭력도 그런 원인가설을 뒷받침해준다. 실제로 이번 총회에서도 1만7천 전공의를 대표하여 참석한 전공의 대의원이 발언기회를 얻기 위해 손을 들고 십수분간 서 있었지만, 의장은 회원들이 고성으로 비난을 쏟을 때까지 그의 발언신청을 내내 무시하였다. 다른 대의원들은 발언기회를 얻지 않아도 먼저 마이크를 잡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지만, 전공의 대의원은 발언기회를 줄 때까지 무려 십수분을 서있어야 했다. 그는 총회가 끝난 후 왜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다른 대의원과 달리 전공의 대의원은 규정을 어기면 4명으로 배정된 대의원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처지를 호소하였다(집행부에서는 대의원수에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함).
예결산위원장은, 회의 내내 회원들을 ‘방청객’이라고 호칭했다. 회원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그 호칭을 고집했다. 이러한 대의원의 태도와 “너희들 몇 학번이야!”라고 외치는 대의원의 표정은,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대다수 대의원들이 회원 위에 군림하는 지위를 부여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제63차 대의원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얻은 첫 번째 소득은 현재 의료계가 겪고 있는 그 많은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한 것이다. 즉,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이 외부에 있지 않고 바로 무능한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대의원총회는 의사들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의사결정기구인데, 이것이 학예회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첫 번째 열쇠가 풀렸다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 소득은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약 70여명의 회원이 참석했던 제62차 대의원총회와 달리 이번 총회에는 약 45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의원들을 수적으로도 압도하였으며 정의와 명분에서도 압도하였다. 따라서 회원들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해왔던 많은 대의원들이 회원들에 의해 위축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지난 해,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으로 대의원총회에서 활약하면서 경만호 집행부를 옹호하던 대의원들이 올해에는 단 한 마디 발언을 하지 않은 대의원들이 다수 있었다. 이들은 철저히 찬반에 대한 자신들의 표결 내용을 밝히기를 꺼려하였지만, 회원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회원들이 단순한 참여만으로 대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회원들에게 큰 소득이었다.
세 번째 소득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비록 상식을 벗어난 대의원들로 인해 회장의 불신임건이 부결되고 감사를 통과하지 않은 결산보고가 승인되는 일이 벌어지기는 하였어도, 정관변경을 통한 간선제 재의결 음모와 감사권한의 축소 음모 그리고 윤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음모 등이 모두 저지된 것은 회원들의 힘이 아니라 할 수 없고 크게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가장 큰 소득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회원들은 모두가 같은 목표와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래서 하나의 뜻을 가진 동지로 뭉치게 되었다. 한 사람의 힘은 비록 작지만, 그것이 뭉쳐서 힘을 만들어내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희망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원천적인 큰 에너지이다. 절망 속에서 절규하며 외로워하던 의사들이 하나의 목표로 함께 나아가는 동지들이 많다는 사실에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비로소 의사들은 희망의 물줄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 물줄기를 누가 막을 것인가.
결국 4월24일은 서로 다른 두 가치관을 가진 의사집단이 충돌하여, 정의로운 목소리를 외친 회원들이 승리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반면, 잃은 것도 있다. 손실은 엄밀하게 표현하면 현재 진행형이다.
전의총과 전체 의료계는 고소, 고발, 비난 등 진흙탕싸움의 추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의총과 의협은 정책에 대한 논의와 개발에 있어 경쟁하거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의료계를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 전의총은 임의단체이고 의협은 공인된 의사단체라는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르는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집행부는 각자 지지하고 있는 의사들을 대표하는 지도적 위치에 있기에 상호간의 협력은 시너지를 낼 수도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바람직한 길을 두고서 두 단체의 지도자들은 엉뚱하게 진흙탕에서 엉켜 뒹굴고 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큰 기회비용들을 낭비하고 있고, 이것은 의료계 전체의 손해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4.24 총회는 그 대결을 외부로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의료계 내부의 싸움은 결코 의료계에 득이 될 수 없을 텐데,이런 상황은 개선될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전의총의 분명한 답변이자 결론은, 의협의 수장이 바뀌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의협의 수장은,전의총 전체 회원들의 수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63차 대의원총회는 모든 분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대의원과 회원들 모두에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전의총은, 소모적인 싸움을 조속히 끝내고 전의총 뿐 아니라 의료계 전체에 손해를 끼치고 있는 기회비용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의협회장 개인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협회비에 대한 배임과 횡령에 대해 검찰의 기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임과 횡령 범죄를 멈추지 않는 그를 빠른 시일 내에 정죄함으로써 대의원들이 심판하지 않은 협회장을 사법부가 심판하게 할 것이다. 수많은 회원들이 진료현장에서 억울하게 범죄자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 오히려 진정한 범죄자를 집행부와 대의원들이 감싸고 있는 의사사회의 형국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또한 입으로만 최선을 다한다고 떠들면서 뒤로 협회비를 빼돌려 쓰는데 주력하는 지도자가 아닌, 회원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힘을 키우고 회원들에게 희망을 주어 의사사회의 동력을 만들어가는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대한의사협회의 수장 자리에서 진두지휘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헨리포드는 “할 수 있다고 믿거나 할 수 없다고 믿거나, 어느 쪽이든 당신의 생각은 옳다”고 하였다. 긍정의 힘을 강조한 명언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성공은 과학이며, 조건을 갖춘다면 성공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훌륭한 지도자를 갖는 것은 조직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올바른 지도자를 속히 세우는 것이 의료의 앞길을 속히 밝히는데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믿기에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패와 무기력에 빠진 동시에 의무는 망각하고 권리만 주장하여 회원 위에 군림하려는 일부 기성세대의 잘못된 가치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제 전국의사총연합은, 그러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며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의사총연합은 의료의 역사를 다시 쓰고, 후배의사들에게 좋은 의료제도를 물려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 목표를 이뤄낼 것이다.